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선운이란 구름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 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한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1707년 쓰여진 '도솔산선운사 창수승적기(創修勝蹟記)'에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 밤에 좌변굴(左邊窟; 진흥굴)에서 잠을 잤다. 꿈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선운사의 시초라고 한다.
봄이면 동백꽃과 벚꽃을 같이 볼 수 있는 곳이며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대웅전뒤편 동백숲은 5천여평의 면적에 수령이 약 500년 정도로 3천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3월 하순부터 5월초순까지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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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찬바람이 감도는 서울의 새벽거리.
아직 동이 트기는 이른 시각에 설레임을 안고 집을 나섰다.
매서운 찬바람에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움추려 떨고 있다.
하늘을 보니 아직도 잔뜩 흐린 날씨.
사당역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산우들이 도착해 있다.
6시 40분. 우릴 태운 버스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면서 교외로 달린다.
인촌 김성수님과 미당 서정주님이 고창 출신이라고 한다.
10시 20분이 안된 시각에 고창에 도착했다.
남녘이라 그런지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다.
선운사 가까이 오니 구도자의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황량하기만 한 겨울산에 울려퍼지는 목탁소리에 선운사를 바라보니 절 안은 을씨년스러운
정경뿐이다.
내려올 때 선운사를 천천히 들려보기로 하고 도솔천을 따라서 걸어갔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나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사이로 흘러내리는 도솔천의 겨울로 걸어 들어 갔다.
그런데 도솔천의 바위와 자갈그리고 물이 검게 보인다.
이것은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참나무과의 낙엽 등에 함유된 [타닌] 성분으로 인해
그렇다고 한다.
도솔천을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길을 꺾으니 상사화 군락지라는푯말이 보인다.
꽃무릇, 잎이 말라 죽어야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
꽃무릇은 선운산에 단풍이 들기 전이면 열흘 남짓 자태를 드러냈다 시든다.
꽃이 피는 시기는 9월 중순에서 하순이다
그 잎이 말라죽는 8월이면 연두빛 대롱이 솟는다.
상사화는 상사병 때문에 죽은 연인들의 넋이 다시 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 도솔천을 따라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다보니 8가지로 벌어진 거대한 장사송이 나온다.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소나무가 됐다는 애달픈 전설을 가진 수령 600여년,
천연기념물 제 354호가 있다.

장사송 뒤편에는 진흥굴이있다.
진흥굴은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 땅인 이곳에 의운국사를
시켜서 선운사를 만들고 퇴위 후에 수도했다는 암굴이다.
또한 진흥왕은 그의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이 굴 윗산에 중애암과 도솔암을 세웠다고 한다.
길이 10미터 높이 4미터의 동굴이다.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채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 수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
온갖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수도를 한 부처님이나 진흥왕이나 생각은 같았으리라..
초라하기만 한 이 동굴속에서 그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수도 정진을 했을까.
한껏 흐리기만 하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도솔암 찻집이 보인다.
시간이 있으면 이 고즈녁한 산사에서 정담이나 나누면서 차 한잔을 했을텐데..
천마봉을 향해 가는 길은 낙엽이 쌓인 길이다.
이곳서부터 나타난 기암들이 눈길을 끈다.

눈발이 점점 강해지는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놀랍기만하다.
나무로 만든 계단길을 따라서 천마봉으로 향했다.

맞은 편 절벽위에 세워진 도솔암이 흐릿하게 보인다.
한 폭의 그림같은 산사의 풍경이다.

도솔암 옆으로 보이는 절벽같은 곳도 아름다운 곳인데
눈이 내려 시야가 흐릿하기만 하다.

이곳이 천마봉이지만 왜 그리 불리우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곳.
그 천마봉 근처에 낙조대가 있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광경은 기가 막히다고 한다.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다해서 낙조대라 한다.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어 태양이 바닷물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낙조대엔 하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 낙조대는 대히트를 쳤던 티비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했던 곳이다.
최상궁이 자살한 곳이라 한다.


산을 다시 내려와서 간 곳이 용문굴이다.
높이 약 20m 넓이 약 100m정도의 바위굴.. 선운사 창건 설화에는 검단선사와 천년묵은 이무기가
싸움을 하다 이무기가 도망치며 생긴 굴이라 한다.
어린 장금이가 어머니와 같이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창에 맞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굴안에서 돌무덤을 만들었던 곳이다.
철없이 어린 장금이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그 곳이다.
일본뿐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한류열풍을 이끌었던 드라마이다.

용문굴에 오니 벌써 12시
눈을 피해서 동굴 안에서 식사를 했다.
밖을 바라보니 벌써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있다.
하얗게 쌓여가는 눈.
산속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겨울은 어느새 깊이 찾아왔는가 보다.
그저 황량하기만할 것 같았던 이 겨울이 이토록 화려하다니........
채 단풍잎을 털어 버리지 못한 단풍나무가 한그루 외로이 서 있다.
미쳐 겨울로 갈 준비가 다 되지도 않았는가 보다...
지난 화려하기만 했던 가을에의 미련이 남아 있어서 일까....
생각해 보면 채 준비도 덜 되었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도 그런 것 같다.
명성 높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우리는 죽음을 향해 있는 존재라고 했지...
죽음이 갑작스럽게 다가들어 오는 것처럼 황당한 것은 없겠지.......
잘 죽으려면 죽기 연습을 해야 된다고 하는데 정말로 이 죽기 연습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엄청난 고통과 애착을 갖기에 그만큼 아픔을 안고 떠나간다.
떠나간 그 존재는 어떻게 될까?
과연 죽음이 끝일까?
도를 닦는 스님들도,
기도하는 크리스챤도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겠지.
미쳐 준비하지 못한 겨울을 맞는,
저 외로운 단풍나무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한참을 걸어가니 거대한 도솔암 마애불이 보인다.
이 고려시대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고 한다.
명치끝에는 검단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마애불에는 예로부터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왔다고. 마애불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하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살도 들어있어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1892년 8월 , 동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손화중의 접(接)에서 그 비결을 꺼냈는데 그후 농민 수백 명이 무장현감에게 잡혀들어가 주모자 세 명은 사형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매를 맞고 풀려났다는, ,,,,

도솔암 내원궁에 왔다.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어떤 분이 대학입시를 앞둔 자녀를 위해 일부러 왔다고 하며 이곳의 지장보살에게 기도를 하면 효험이
제일이라고 말해 준다.
경건하게 합장을 해 보았다.
기독교나 불교나 궁극의 목적은 하나가 아닌가?
돌아가는 길은 진눈깨비가 내렸다.
오늘 같이 아름다운 날,
돌아오면서 가슴 시려오는 상사화에 대해서 들었다.
모두가 가슴 아픈 별리는 싫은가 보다.
그런데 어찌하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것을....
진눈깨비를 맞아가면서 선운사 경내로 들어갔다.
관음전에서 금동보살좌상이 있다고 하는데 볼수가 없었다.
대웅보전 뒷편의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인데 그것도 못 보고.....

나무에 달려있는 게 눈송이 인가 하고 바라다 보니 목련꽃 봉우리.
왠일인가. 기상이변으로 .....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가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라고 늦은 동백을 노래했다.
오늘은 설경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선운사에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 기쁨이 아직도 내 안에 충만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