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마을 , 임곡리
은둔의 마을 , 임곡리
내가 태어났던 곳은 산골 벽지.
태어나자마자 근처로 이사를 갔지만 친척들이 있어서 어린 시절 방학 때면 가끔씩 들렸던 곳이다.
속리산 국립공원과 100대 명산에 속하는 구병산 자락이다.
가기 어렵던 속리산과 구병산도 이젠 고속도로가 있어서 서울에서 2시간 10분 정도에 갈 수 있다.
아름다운 구병산의 시루봉 밑에 위치한 속리산 휴게소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게소라는 평가이다.
이 쪽 산길은 이제 거의 사람이 다니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예전 서당골에 있는 길이 오솔길이었을 땐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적암 지나서 도계에서 하차하여 이 마을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지금이야 이 마을 사람들도 웬만하면 차가 있어서 저쪽 서당골 길로 다닌다.
서당골은 같은 임곡리에 속하지만 원래 한참 아랫쪽에 위치한 화전민 부락이었다.
그러던 곳을 지금은 청소년 수련원과 천문대 농장등을 만들어 놓은 관광지로 탈바꿈해 놓았다.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 왔다는 이 마을.
지금은 그림같은 집이 꽤 있고 도회지에서 온 낯설은 이들이 많아졌다.
산길을 올라오다 뒤돌아 보니 아름다운 시루봉이 보인다.
그 뒤로 구병산이 병풍처럼 평쳐져 있는 저곳은 충북 알프스 지역이다.
아마도 임곡 산위에서 바라보는 구병산의 모습이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싶다.
구름이라도 산중턱에 깔려있는 날이면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같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물도 귀한 곳이지만 지금은 지하 수백미터에서 끌어 올린 암반수로 수도를 설치하여 공급하고 있다.
아름다운 야생화가 지천에 깔려 있는 이 마을.
뻐꾸기 소리가 늘 들려오고 여름이면 매미가 시끄러운 곳이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열려 있고 버찌나무 열매도 열려 있는 이 산골의 한적한 풍경은 정겹기 그지 없다.
아직 인간의 손 때가 덜 묻어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청정 지역인 것은 확실하다.
마을의 반이 상주,
반이 보은군에 속하는 도 경계 지역이라서 말투도 경상도,충청도 사투리가 있다.
같은 마을인데도.
그리고 상주감과 보은 대추가 유명하여서인지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많다.
그래서 노모가 이곳 넓은 밭에다가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백 오십여그루를 심었다.
가끔씩 이곳으로 와서 며칠 머물면서 밭농사를 하곤 했는데 이젠 힘이 부치나 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맞는 유실수를 심어서 후일을 기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를 심어 놓아도 풀천지.
작년과 다르게 벌써 어른키만큼 자라버린 잡초 앞에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뽑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땀이 비오듯한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도 한껏 해도 진도가 별로 나가진 않는다.
한 이틀하고 나서 비닐을 씌웠다. 그러면 내년, 후년에도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는 노모의 생각으로.
그리고 나서 벌초를 대충 하루 정도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아직도 많은 일거리가 남아 있는데 혼자 내려가려니 어머님이 맘에 걸린다.
쉬엄쉬엄 한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말 벗도 없는 곳에서 혼자 밭을 매는 것은 고역인데 잘도 하신다.
그래도 일할 때가 맘이 편하다는 그 분.
어찌 편히 해 드릴 수가 없는 분이다. 편한 삶을 거절하시는 그 마음이 이해가 안가지만 어찌하랴....
나야 매일 집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어머님은 이것저것 다 갖춰진 콘테이너 집에서 며칠씩 묵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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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 이 동네를 빠져 나왔다.
120여년 묵은 느티나무가 석양을 등지고 입구에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