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아침가리골 트레킹 후기
1) 산 행 지: 강원 인제군 방태산 아침가리골 트래킹
2) 산 행 일 시: 2008년 8월 6일
3) 산 행 코 스: 방동약수~조경동교~조경동계곡(아침가리골)~진동마을
산우들 일곱명이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 청정지역 강원도 인제로 향했다.오늘 가는 아침가리골은 오랜 세월 세상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은둔의 땅이라하면 약간 과장된 표현일까. 산행이라기보다는 계곡의 물과 바람과 구름을 벗하면서 트레킹하러 가는 것이다. 인제에는 정감록에서 말하는 물과 불, 그리고 바람, 이 세가지 재난이 들지 않는다는 삼재불입지처가 일곱 군데나 있다. 삼둔사가리라고 하는 살둔, 월둔, 달둔등 삼둔과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 연가리등 사가리등 지역이 바로 그 삼재불입지처인데 예전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어 수백 가구의 화전민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사방에는 높고 험한 산들이 둘러쳐져 견고한 자연 성곽을 이루어 바깥 세상에 노출이 안 된 데다가 안에는 경작할 작은 땅과 물이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해 세상에 전쟁이 나도 평온하게 숨어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 아침가리 마을이라 불리는 조경동은 해발 1338.4m의 구룡덕봉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흘러 점봉산 (1424.2m)에서 발원된 진동계곡과 만나는 길터에 이르기가지 13.5킬로미터를 달리는 아침가리골 중간에 있다.
지금은 방동에서 월둔까지 비포장도로가 뚫려 있지만 이 도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이곳은 알아도 찾아가기 힘든 곳이었다고 한다.
길에서 그 입구가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것도 없을듯한 계곡을 따라 약 4km나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아침가리라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이다.주위에 방패산(1,435.6m), 구덕룡봉(1,388.4m),응봉산(1,155.6m),가칠봉(1,240.4m) 같은 1천m 이상의 높디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깊은 오지이라서 아침에만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새 해가 져 버리는 첩첩산중이었다 해서 생긴 말이다.한자어로는 아침이란 의미의 朝(조)'와 갈'耕(경). 하여 朝耕洞(조경동)이라고 쓴다.
아침가리 트레킹은 방동약수 입구에서 고개를 넘고 다시 하산하는 도로를 따라 5킬로미터 들어선 조경동교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차를 정상에 있는 공터에 세워두고 조경동교를 향하여 하산하기로 했다.하산길은 그저 평범한 조용한 산길인데 비포장도로가 나오는가 하면 포장도로가 나오는 길이다.
아침가리골이 끝나는 이 지점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 올라가려다가 결국 차를 가지고 공터까지 올라갔다.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올라가서 도착한곳이 조경령 정상의 공터이다.여기서 산행기점으로 하고 출발할 때 의정부에서 온 가족 일행을 만났다. 이왕 같이 가는 몸이어서 우리 일행과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다.
차를 공터에 두고 작은 도로를 한 삼십여분 내려오니조경동교라는 커다란 시멘트 다리 하나가 보이고 그 밑에 물이 흐르는 시원한 냇가가 있다.강렬한 햇빛 속에서 한참을 걷다가 아름다운 계곡 물을 만니 반갑기 그지없다. 조경동교에서 약 5km 이어지는 무인지경의 청정계곡의 작은 길을 따라 걷고 물속을 헤쳐 나가노라면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바닥까지 비치는 투명한 옥빛 물, 하얀 거품을 만들면서 세차게 흘러 내려가는 작은 폭포들, 계류 속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 떼 . 앞으로 펼쳐지는 높은 산과 파아란 물빛을 바라 보노라면 세속의 번뇌를 잊고 맑은 마음을 되찾을듯 하다. 30여분 걸으니 경치가 좋은 곳이 있어 이곳에 자릴 잡고 삼겹살 파티를 하였다. 자연 속에서 먹는 맛은 기가 막히다.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과 식사는 별미, 그 자체이다.
이곳에는 계곡 옆에 작은 길이 나 있지만 중간 중간에 길이 끊겨서 몇번씩 물을 건너야 한다.
맞은 편에 있는 작은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중간 중간에 길이 끊겨서 물을 가로질러 가야하기 때문에 그냥 처음부터 물 속으로 들어가 물과 일체가 되어 걷는 것이 좋다.그게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진수인 것이다. 등산화와 옷을 적시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도 길이 끊겨서 결국 물에 들어 오고야 만다. 물 속에 들어가도 좋을 헌 신발이 유용하게 쓰여지는 곳이다.물론 산악용 전문 샌달이라면 더욱 좋다.
계곡을 따라 내려 가노라면 거센 물살을 가로질러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때로는 물의 깊이가 가슴팍을 넘는 곳도 건너야 한다.
그래서 물길을 따라 걸어야 하므로 트레킹 후 갈아 입어야 할 여벌의 속옷, 양말 지갑 휴대전화등을 반드시 비닐팩에 집어 넣어야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물이 범람하면 못가는 위험한 코스이다. 그래서 일단 비가 온다하면 트레킹을 중지하는 게 좋다.
그리고 물 속을 걸어야하기에 오직 여름에만 즐거움이 허락된 코스이다. 그외 계절에 가는 것은 추위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가다가 그냥 옷 입은 채로 물 속에서 한참을 놀곤 했다.동심으로 돌아가 맑은 물 속에서 한마리 물고기가 되어 떠다니기도 하고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잊곤 한다.
"참 좋은 곳이다."산우들이 몇 번씩이나 감탄을 하며 가던 길을 멈추곤 한다.
혼자 걷긴 너무 아까워서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곤 한다.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티없이 맑은 파란 물을 보면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이나 백담사 계곡이 부럽지 않다.
마음까지 시려오는 파랗게 물든 맑은 물.깎아 지른 듯한 높은 산이 그 물에 비쳐온다.한줄기 바람이 잔잔한 물결을 스치고 지나가면 더할 나위없이 맑은 파아란 하늘이 물 속에서 출렁거린다.
계곡이 깊고 사람의 때를 타지 않아서 지금도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하늘다람쥐가 산다고 한다.지금도 일급수에만 산다는 갈겨니,꺽지,쉬리,금강모치 등이 맑은 물에서 살고 있으니,명경지수(明鏡之水)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일컫는게 아닌가 싶다. 청옥과 같은 맑은 물빛이 흐르고 하늘엔 오직 파란 빛이니 한여름의 축제가 조용히 이 골짜기에서 열리고 있는 듯하다.요란한 물소리에 매미소리 벗하면서 물속을 거니는 기분은 글로써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듯하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는 아침가리골의 교향악은 골짜기 가득 퍼져나가는 음이온과 같이 한다.봄이면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름이면 매미가 합창을 하는 이 곳에 있노라면 마치 환상의 세계에서 있는 느낌이 든다.
이 근처에 마을이나 인가가 전혀 없어서 늘 청정한 물이 흐르고 있다. 기나긴 계곡에는 작은 오두막을 지을 공터도 없거니와 비가 내리면 계곡이 잠겨 버려 쉬이 들어 가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물 속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이빙도 하면서 한 여름날의 망중한을 피안의 세계에서 보냈다.
세상이 이처럼 평화롭고 맑기만 하다면 전쟁도 종교도 다 필요없을 것만 같았다.그저 조물주와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이 시원한 계곡이 에덴의 동산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인간에게 유토피아는 근접할수 없는 꿈의 세계가 아닌 것 같다.종교 속에서 절대자에게 의지해야만이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고 그것도 아니되면 죽어서 신이 만들어 놓은 영원한 천국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자연이 말없이 천년 만년 순환하듯이 우리도 욕심을 버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면 그게 바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러나 인간의 속된 욕망이 자기네들의 보금자리인 자연을 망치고 있다.자연은 우릴 이토록 감동시키고 때론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서서히 닥쳐오는 재앙을 경고하는데 정치가들은 자기들만의 권력을 챙기려고 하고 종교가들은 신을 팔아서 재물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편협한 도그마에 사로 잡힌 수많은 종교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연은 어딜가나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답기만하다. 아침가리골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왔던 이상향의 세계일까. 몰론 아니다.어찌보면 대자연은 우리를 위한 이상향의 세계로 남아 있지만 인간들의 마음은 속되고 부질없는 세욕에 사로 잡혀 눈이 먼 상태로 있는게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곳은 눈부신 아름다움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곳이다.
아침가리골을 따라서 내려 가노라면 크고 작은 폭포와 소들이 연이어 나타나기도 한다.하얀 거품을 내뿜는 물결 뒤로는 검고 흰 암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마치 마당바위같이 생긴 바위와 요상하게 생긴 바위들이 연이어 나타나기도 한다.
아침가리골에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부나 보다.한여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선선한 날씨이다.가을 햇볕처럼 따사로운 햇빛. 그 해가 빨리도 저문다.하류에 오니 이미 산그림자가 계곡을 뒤덮기 시작한다.
서울의 폭염이 저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시원한 계곡이다.
물살이 센 곳이나 고요한 곳이나 지팡이가 꼭 필요하다.지칫 미끄러지기 쉬운 곳이라서 스틱을 유용하게 쓰면 넘어지지도 않고 한길 물 속으로 들어가도 빠져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스틱을 깜박 잊고 그냥 온 내게 아침가리골의 산신령께서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로 하라고 선물을 한다.감사히 받아서 요긴하게 그 지팡이를 들고 물 속을 헤집고 다녔다.
몇시간 동안 계곡의 시끄러운 물소리와 매미소리를 벗하노라면 귀가 멍해질 때가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시끄러운 물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함에 잠기게 되는 곳도 있다.아침가리골은 계속하여 이제 자신의 속살까지 다 보여주려나 보다. 지루함이란 전혀없이 오직 우리를 놀라운 신비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뚝 서있는 산에서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한 원시림이 자라 있고이름모를 야생화는 여기 저기 수줍은 듯이 모습을 보이고 한가로이 노닐던 다람쥐들은 낯선 방문객들의 인기척에 놀라서 황급히 숨어 버린다.
하얀 모래톱에서 노닐던 작은 물고기 떼만이 우릴 반기고 주위로 몰려든다.
하류를 내려오면 올수록 물결은 더 거세지고 계곡은 좁아진다. 계곡을 구비 구비 돌아갈 때마다 늘 다른 풍경을 연출해 놓고 우릴 시원한 태고의 여름 속으로 이끌어준다. 이토록 자연은 아름답다.
비닐 속에 넣어두었던 디카를 꺼내들고 아침가리골의 아름다움을 찍었다.이 골짜기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렌즈를 들여대고 심심산중의 비경을 담아 두었다.
한 오,육년전부터 산꾼들의 입에서 좋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면서 아침가리골은 세상사람들과 환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다.지금에야 여러 산악회에서 여름의 필수 코스로 잡고 있으니 언제까지 이 아름다운 태고의 모습이 보존될 수 있으려나...
길을 찾아서 물을 건너다가 예쁜 단풍나무를 봤다.누구라서 가을에 이곳에서 이 아름다운 단풍을 봐줄까....물길을 몇 번씩이나 가로 질러야 올 수 있는 이 곳에 누가 단풍을 보겠는가.
가을에 다시 와서 아름다운 만추를 느껴 보고 싶다.
투명한 물빛에 비쳐오는 조약돌은 아름다운 색으로 우리 마음을 적셔 놓는다.인공적인 요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이곳은 오직 물길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산물이다.수만년 바람과 눈비에 깎여 만들어진 산과 바위들. 그 강인한 산과 바위를 헤집고 물길이 조금씩 열리더니 이렇듯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었나 보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오기를 잘했다고 한다. 동행했던 가족일행은 우리와 계속 행동을 같이 했다.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몸짓과 웃음이 산아래 울려 퍼진다.물장구를 치며 연신 즐거워하는 초딩아이의 모습 또한 정겹기 그지없다.이렇듯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하루를 함께 할수도 있는구나 싶다.
만남과 헤어짐은 설레임과 아쉬움이다. 아침가리골과의 만남도 그런 우연찮은 인연이 있었을까.
내린천과 합류되는 진동리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어 내린천은 은빛 물결로 반사되고 있다.이곳은 많은 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은둔의 계곡을 넘나들며 타고 내려오다 보니 섶다리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마치 피안의 세계에서 속세로 다가온 것만 같다.
돌이켜 보면 경탄과 아쉬움 속에 보낸 5시간은 속세를 벗어난 시간들이었다.빨리간다면 3시간 정도면 되겠지만 마음껏 아침가리골의 풍경과 고요함을 즐기기에는 5시간도 짧은 시간들이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청정지역의 공기를 마시고,청옥과 같은 맑은 물 속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놀고,환하게 웃는 모습이 되어 사진을 찍기도 한 오늘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시간이 감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아침가리골을 빠져나온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시원한 메밀 막국수 한그릇을 뚝딱 해 치우고 번잡하기만 한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