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평 발왕산 눈꽃산행
발왕산눈꽃산행
2010.12.30 (목요일)
용산2리 - 마을회관 - 사잇골 - 동남능선 - 공터 - 정상 - 공터 - 실버라인 - 용평스키장주차장 (5시간)
눈발이 휘날리는 서울은 영하 4도의 아침이지만 찬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한 것 같다.
삼라만상이다 얼어 붙은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수도권에 최고 10㎝의 폭설이 온다고 한다. 내일은 영하 12도로 떨어지면서 한파가 온다고 한다.
일어나려고 하니 잔기침이 나온다.
쉬고 싶지만 약속한 사람들이 있어 아이젠과 겨울 산행장비를 챙겨서 무리해서 출발을 했지만
산행지 소백산으로 가는 내내 기침이 나온다.
중간 문막 휴게소에 들리니 주최자가 소백산은 눈보라가 거세서 입산금지라고 한다.
작년 겨울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소백산 비로봉에서 보았던 그 화려했던 눈꽃과 설경을
다시보고 싶어 가려고 했던 것인데 주최 측이 급히 발왕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한다.
발왕산은 높이 1458m로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진부면, 강릉시 왕산면에 거쳐 소재하고 있는데
용평리조트 정상에 있는 산이다.
산의 이름은 옛날 발왕과 옥녀의 전설에 의해 발왕산이라 명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고을에 기골이 장대한 발왕이가 살고 있었는데 몸집이 너무 큰 탓에 장가를 가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가 옥녀라는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약속한 발왕이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나 제왕 고개를 넘던 중 산적질을 하다 포졸들에게 잡혀 맞아 죽었다.
이를 알지 못한 옥녀는 기다림에 지쳐 죽고 말았다. 발왕산 건너편 옥녀가 묻힌 봉우리가 바로 옥녀봉이다.
용산리에 도착하니 하얀 눈이 내린다.
며칠 전부터 함박눈이 내려서 온 산하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
온갖 지저분한 삶의 찌꺼기을 다 덮어 버린 설경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스틱을 늘리고 방한점퍼를 착용하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약 두달 만의 그리웠던 산행이다.
그동안 체류했던 일본에서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궁에서 단풍과 산책을 즐겼을 뿐 산행을 하지 못했다.
온통 눈으로 뒤덮힌 산,거기에다가 눈내리는 날 산행이라니 등산매니아들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등산을 할 때 올해부터는 모자를 챙겼다.
산에서 고도 100m를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1℃씩 떨어진다. 하지만 산에서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강한 바람을 맞으면 평소보다 240배나 빠른 속도로 체온을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발이 시리면 모자부터 써야 한다. 머리로 빼앗기는 체열이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적설량이 많은 발왕산, 출발지가 이미 해발 900미터인 지점에서 오르니
산 정상 높이 1458m가 그리 높지않게 느껴진다.
산 중턱을 지나니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뺨을 때리며 손가락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헤치며 힘들게 올랐다.
조금 드러낸 얼굴로 치고 드는 혹한의 눈보라지만 가슴은 시원하기 그지 없다.
함박눈으로 길이 지워진 능선에 첫 발자국을 찍어 새 길을 내며 걸었던 선두 일행이 고맙기 그지 없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와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올 뿐 조용하기만 하다.
아이젠을 했어도 눈 속으로 푹!푹!들어가며 미끄러지는 급경사에서 다른 곳을 볼 여력이 없고
하얀 눈길을 헤치며 오르려고 거친 숨을 내쉬며 전진한다.
하얗게 내뿜어지는 입김에 맹추위를 간혹 느낄 뿐이지만 산오름에 몰두하며 가다보면
땀이 나와 추위도 세속의 번잡스러움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
눈덮힌 추운 겨울산행의 묘미가 바로 이런 몰입이 아닐까 한다.
힘든 산행 속에서 참고 오르다 보면 저절로 무아의 경지에 빠지는데
수도승들의 원하는 희열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짐작해보기도 한다.
삭막하기만 한 추운 겨울산에 오르는 건 역시 설경을 만끽하고픈 이유가 제일 클 것이다.
추위를 견디며 오른 산정에서의 쾌감과 자연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있기 때문인 것이다.
참고 노력한 자만이 볼 수 있는 절경과 쾌감은 아무리 돈이 많은 억만장자라 해도,
세상을 잡아 흔드는 권력자라고 해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걸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하얀 설경 속에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눈앞에는 살아 천년,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신비로운 모습이 눈에 띈다.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과 앙상하기만한 나무 가지에 피어 있는 상고대는
환상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온 산에 하얀 눈꽃이 피어 있는 겨울산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발왕산
쉬지 않고 약 두시간반만에 오른 발왕산 정상에는 눈에 익은 풍경이 있다.
곤도라를 타고 올라온 스키객들이 즐겁기만 한가보다.
예전에 곤도라를 타고 오르내린 적은 있지만 등산으로 오른 적은 첨이다.
발왕산 정상은 워낙 삭풍이 심한 고지대라서 키큰 나무가 없다.
정상에서 만나는 주목군락은 발왕산의 자랑거리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은 지금도 산정을 지킨다.
주목(朱木)은 줄기의 속살이 붉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는 삼국시대 중반쯤부터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정선 두위봉의 1,400살 먹은 주목이다.
정상 아래는 눈덮힌 골짜기와 산기슭에 펼쳐진 거제수나무 숲이 희미하게 보인다.
잠시 사진을 찍고 온수를 마시고 나서 다시 하산.
하산 중간에 스키로드를 건너야 되는 데 그냥 그길을 따라서 한시간 반 정도 내려가니 용평리조트.
스키 코스를 따라 걸어오면서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스키보다는
스노보드를 즐기는 것 같다.
중급이상의 코스라서 역시 잘타는 사람들이 실력을 뽐내고 있다.
영하 3도~5도 정도의 날씨에 스키를 즐겨야 좋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스키여행을 타국으로 가는 이유가 바로 그네들의 혹한이다.
너무 추워서 스키를 즐길 수가 없다는 뜻이다.
몇십년전 독일에 있을 때 자주 간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이 생각난다.
인스부루크 근처의 산골마을이 겨울 시즌이면 온통 스키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리 춥지 않은 천혜의 기상조건이 많은 적설량을 만들어 한겨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때만 해도 스키는 먼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졌는데 이제 한국도 선진국 못지 않게 여가를 즐기는 나라가 되었나 보다.
내려오니 등산자켓이 땀에 젖어 약간 축축하다. 그만큼 땀을 많이 흘렸지만
손과 얼굴이 시리다는것만 느꼈을 뿐이다.방수등산화와 방한 모자를 챙기길 잘한 것 같다.
막 내려와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함박눈이 쏱아지기 시작한다.
강추위 속에서 고생을 한지라 눈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차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니
이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리해서 간 신행에 며칠간 감기는 각오해야겠다..
산행후의 뿌듯한 성취감은 있지만 아쉬움이 남아있다. 중간 중간에 좋은 설경이 많이 있었지만
손가락이 얼 정도의 추위라서 사진은 많이 못 찍었다.
4시 반 경에 읍내로 나가서 강원도 명물 황태국으로 늦은 식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
차창 밖에는 눈발이 하염없이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