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흘림골의 설경
설악산 흘림골
*날 짜 : 2012년 3월2일(금요일)
*산행코스 :흘림골지킴터~여신폭포~등선대~등선폭포~무명폭포-십이폭포
~주전골~용소~선녀탕~오색약수
거리의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겨울이 다 갔나 싶다.
지독히도 싫었던 이 추운 계절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하얀 설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난 가을의 끝자락에선..... 혹한의 겨울이 오는게 유난히도 싫었다.
도쿄로 돌아가 따뜻한 가족과 항상 밝은 아내의 웃음 소리에 심적 고통과 과욕을 뿌리 칠 수 있었다.
새해가 되어 그나마 나은 소식들이 들려오고, 하얗게 뒤덮힌 아름다운 산이 있어서 견뎌낸 혹한의 계절......
며칠 전에 영동지방에 폭설이 내렸고 이 날 눈이 온다는 뉴스에 급히 달려간 곳이 설악산의 흘림골이다.
대절 버스 속에서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들이 망서림을 부추켰지만 그래도 이 겨울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새하얀 상고대를 기대하면서 떠났다.
설악산 흘림골..
한계령 남쪽에 있어 남설악이라 불리는 이곳 흘림골은 갖가지 기암괴석이 있고,
계류엔 많은 폭포와 담(潭)이 있는 선계(仙界)와 같은 곳이다.
흘림골은 이미 여러번 다녀와서 눈에 익은 풍경들이겠지만 그래도 하얀 설경을 볼 수 있으리란 설레임에
일을 미루고 갔다
비가 내린다던 서울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설악산 근처에 도착해도 눈이 그리 보이지 않아 괜히 왔나 싶었다.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눈발이 가늘다.
차는 한계령휴게소를 지나 아름다운 한계령 길을 따라서 흘림골 입구로 향했다.
함박눈이라도 내려줬으면 좋았으련만...
흘림골입구에 도착해 보니 생각만큼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설경을 맛보기엔 충분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탐방지킴터와 오르막 계단길이 멋스러운 들머리였다.
마치 옥과 같이 푸른 빛을 띄는 얼음을 보니 아직도 설악은 한겨울처럼 보였다.
물은 모든 빛을 흡수하지만 푸른 빛을 흡수하지 못해서 바다와 깊고 맑은 물이 푸르다는 게 과학적인 설명이다.
설악의 천불동과 ,십이선녀탕계곡은 유난히도 맑고 푸른 물이 많아서 사람들을 감동케 한다.
흘림골도 역시 신행하다보니 폭포와 계곡의 얼음이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여심폭포↗
女深폭포는 높이30m로 여성의 깊은 곳을 닮았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여신(女身) 폭포라고도 부른다
배낭을 고개마루에 놓고, 가볍게 등선대로 오르는 오르막길엔 하얀 눈꽃이 피었다.
얼어서 생긴 상고대가 아니고 아침부터 조금씩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있어
행여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라갈듯한 눈꽃이지만 그나마 매력적으로 보였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풍경들↘
날씨가 흐려지니 보이는 풍경들은 온통 흑백 세상, 살아 숨쉬는 최고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제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할지라도 이 신비로운 풍경들을 실제 보이는 만큼은 그릴 수 없을 듯하다.
하얀 눈이 나무에 뒤덮혀 있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일정도로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흘림골의 풍광이다.
역시 산은 갈 때마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동이란 말을 남용하고 싶지 않지만 이때 이 순간의 감정표현으로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많은 수식어를 동원하여 쓰고 싶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감성이 메말랐다고 하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세월의 무상함에 다 메마른 것 처럼 보였던 내 감성에도 은은한 감동의 파문이 일렁인다.
몇년 전부터 산을 다니면서 눈과 가슴에만 담았던 풍경들을 두고 두고 간직하고 싶어 시작했던 사진.
아직 어설프지만 가끔씩 좋은 풍경 사진들을 한 장 두 장 건지는 이 맛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되었다.
등선대에 오르니 그 눈에 뒤덮힌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잘 그려진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만물을 닮은 기암괴석들이 영봉을 이루고 있어서 만물상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한계령 휴게소와 오색약수터 주차장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반대편의 만물상은 잘보이지 않는다.
오른 지 십여분이 지나니 갑자기 구름이 산을 뒤덮는다.
운무에 오히려 신비롭기까지 하지만 빛이 없으니 사진을 찍기엔 더 이상 무리일 것 같다.
조금만 늦게 올랐다면 이 좋은 풍경을 놓쳤으리라.
저멀리 한계령이 보이고~
칠형제 바위
그리고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대청봉 소청봉.
어느새 눈이 그쳤다.
오색으로 가까워 질수록 눈이 녹아 버린 한겨울의 풍경들이 자리잡고 있다.
게단을 내려오면서 들리는 물소리.
설마 하면서 내려갔는데 두꺼운 얼음을 깨고 나오는 물줄기들이 보인다.
역시 3월의 봄을 이기지 못하고 겨울은 물러가나 보다.
3월을 예찬한 이해인 수녀의 시가 한편 떠오른다.
주전골 근처에 이르르니
기상악화로 인해 등선대 쪽으로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이지만 눈은 이미 그친 지 오래.
용소폭포로 향했다.
가을날 화려했던 단풍에 매료되었던 이곳이지만 겨울날은 그저 쓸쓸한 풍경이다.
다행히 푸르른 용소에 물이 떨어지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곳이다.
주전골에서 오색약수까지는 눈이 녹아버린 상태...
주전골의 용소 폭포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沼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마리가 승천하려고 했지만 암놈 이무기는 준비가 안되어
승천할 시기를 놓쳤는데 용이 되려다가 못되어서 이 폭포와 바위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주전바위
주전,즉 엽전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전골은 옛날 화폐로 쓰던 주전을 위조하여 만든 도적패의 골짜기라하여 붙여진 이름.
독주암
독주암 정상에는 홀로,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천불동 계곡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고 안내판에 쓰여져 있다.
얼마전 근교에 있는 산을 갔다가 일행을 먼저 보내고 커피 한 잔을 타 먹고 여유롭게 내려 온 적이 있다.
커피의 쓴 맛이 향기롭게 느껴지면서 그 향기에 취해서 잠시 동안 행복해진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카페인에 가볍게 중독되었다는 것일수도 있겠다....
넓은 바위 위에서 따스한 햇빛을 받으면서 커피 향기에 취해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졌지만 찰라같은 ecstasy에 젖어들었다.
도그마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이 자연과 더불어 한 평생 살아가면 되는 것을,,,,,
가벼운 카페인의 유혹보다 더 덜콤한 것은 아름다운 산의 유혹이다.
산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산우가 있음에 감사드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준 조물주에게 감사를 드린다.
남들이야 산에 중독되었다고 하지만 이야말로 행복한 중독이 아닐까 싶다.
날머리인 오색약수에 도착하여 근처 식당가에서 산채정식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근 3주만에 마신 막걸리 몇 잔에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복정.
또 하나의 산행이 추억으로 변해 아름답게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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