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옛집ㅡ 수연산방ㅡ길상사ㅡ삼청각ㅡ 심우장
22.9.22 목10:30~
최순우옛집ㅡ 수연산방ㅡ길상사ㅡ삼청각ㅡ 심우장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돈암장, 의친왕의 별궁정원 성락원, 국보급 문화재의 요람 간송미술관, 서울의 3대 요정에서 불교 도량으로 변신한 길상사 등 성북동의 명물이다.


======최순우옛집======
최순우(미술사학자,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1916~1984) 사시던 집이다.

최순우 옛집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최순우 옛집에서 썼다.


최순우 전 관장의 옛집은 내셔널트러스터의 시민문화유산 제1호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최순우 옛집은 2002년 시민들에 의해 보전됐다.


1930년대 지어진 120여 평의 한옥은 호젓하다. ‘ㄱ’자 형의 본채와 대문을 낀 ‘ㄴ’자 형의 바깥채가 마주한다.
본채에는 최순우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본채의 매심사(梅心舍) 현판 아래 쪽마루에는 최순우 선생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가 놓였다.

수연산방
아침 오픈 시간이 아직 안되어서 ~~~

=====길상사===














==============================삼청각===============
삼청각(三淸閣)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0년~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제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2000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규모는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이다. 6채의 한옥이 있으며, 건물마다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되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있다. <위키백과에서 >








=================심우장====================


한용운 상

심우장(尋牛莊)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550호로 승격되었다.
대지의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인 남쪽에 한옥으로 지은 심우장이 북향하여 서 있고, 대문 맞은편에는 벽돌조 단층으로 지은 관리인 주택이 심우장과 직교하며 동향으로 서 있다.
만해는 1919년 승려 백용성(白龍城)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가하여 <3·1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한 분으로 유명하다.
처음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시베리아와 만주를 순력한 후 28세 때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1910년에는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근대 한국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님의 침묵》을 펴낸 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에 가담하였으며, 1931년에는 조선불교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한용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심우장의 이름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박한 명상이 가능하다.
마당에는 성북구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나무로 소나무와 향나무가 있으며 한켠에 올래여행(역사문화여행) 스탬프가 있는 우체통이 있다.<위키백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