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야의 추억
해마다 8월 15일이 되면
도쿄의 히비야공회당은 도쿄 23區에서 몰려온 우리 교포들로 인해 북적인다.
한국 민단에서 준비한 광복절 기념식이 끝나면 한국에서 온 유명가수와 푸짐한 경품들이 마련되어 한껏 흥을 돋운다.
이날 일본은 패전일이라 우울한 날이겠지만 우리 교포들에게는 축제의 날인 것이다.
이날 빠짐없이 나오는 노래가 타향살이다.
이제는 작고하고 안 계신 가수 김정구 씨가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모두가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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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너무도 처량하여.......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비교적 안정이 된 교포 일세들의 조국 고향산천에 대한 향수가 각별하다.
아직도 조국을 이런저런 사정으로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은 더욱더 그렇다.
청주근교에서 자라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다니면서 사상문제로 인해 오래전에 일본으로 도피하셨던 어르신네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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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청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과 우암산 그리고 본정통이란 거리에 대해서 몇 번이고 듣고 싶어 하셨고, 고향의 미호천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몰라했다.
그분의 외아들은 일본의 조총련계 조선대학을 나왔는데 참으로 준수하게 생겼고 사업에도 성공하였는데, 효성이 지극한 그 아드님이 고향산천을 비디오로 찍어다 보여 드리곤 했다.
요즘은 인터넷과 더불어 일본에도 한국방송이 진출해서 조국의 산과 들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다고 자랑하던 것이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한국여권을 소지하고도 중국이나 유럽은 여행가지만 한국에는 가지 않으시는 그분의 속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떠냐고 권하곤 했었다.
깊은 지식과 사려 깊은, 옛 선비 같은 그분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은 어느덧 恨이 되어 있었다.
그분은 북의 환상을 저버린 지 벌써 오래되었다고 하면서, 김일성부자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곤 했었다.
올해 일본집에 들렀을 때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 고향의 한을 안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 년 전 독일에서 귀향한 송두율교수가 각종 매체에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의 사상이라던가 실정법위반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참으로 오랫동안 외국에서 떠돌다가 돌아온 그의 한마디에 난 그의 외롭고 고단한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겠지만 추방만은 도저히 감내할 수가 없다고 한 그의 말 한마디에 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가 사는 나라... 독일.
나도 만 삼 년 동안 유학생활을 해 온 독일은 먼 나라이지만 살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월등한 국민소득과 사회복지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항공료도 만만치 않은 나라이다.
거기에다 자존심 강한 독일민족 속에서 살아가면서 조국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더 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한국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가득 찬 나라여서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타락한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판을 치고 온갖 부조리가 난무하는
이 자그마하고 변변치 않은 나라가 무엇이 그렇게도 그리웠던가?
경치가 아름다운 금수강산이기 때문일까?
물 맑고 공기 좋은 나라여서?
살기 좋고 부자나라여서?
아니다.
이민지원자들이 쇄도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냉정하게 이 나라를 바라보면
이 나라는 그렇게 특별히 아름답고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단지
이곳은 그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향살이에 지친 그의 심정을 나는 알 것 같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귀소본능이 강한 민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민족이던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사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 한국인의 위상을 알 수가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런대로 대접받을 수 있지만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 가면 가득 찬 편견과 차별이 엄연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피부에 느끼는 차별감은 더 커진다.
하물며 백인들은 더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젊은 시절 16년 동안을 외국에서 지냈다.
유럽과 일본에서 기나긴 타향살이를 하면서 조국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간직한 채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왔다.
가까운 일본에서보다 거리가 멀고 인종이 다른 유럽에서 더 큰 향수와 애착감을 가지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