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세월호의 참혹한 비극 본문
”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이 취소되었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내가 침울하게 말을 한다.
학생들은 고대하며 기다렸던 수학여행이 취소되었으니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두고두고 살아가면서 그리운 추억이 될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이 세월호 참변으로 다가와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은 수학 여행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내가 있는 학교는 여행사에 위약금을 아직 내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서 다행이지만 타 학교에서는
일인당 수십만원의 위약금 문제가 생겨 정부가 보조해 준다고도 한다.
학생들의 담임을 맡고 있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고가 남다르게 다가온다고 한다.
단원고의 2학년 담임교사들의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뉴스에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진도의 세월호 침몰에 온 나라와 국민들이 슬픔으로 침통한 분위기다.
사고 지역인 진도를 다녀온 적이 있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 역시 바다가 좋아서 섬 여행을 즐겨 배를 타곤 하지만 이렇게 참혹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 나니
다시금 안전 불감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안전사고가 줄을 잇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다는 말인가.
작년 기준으로 일인당 평균 임금이 월 435만 원을 훌쩍 넘고 매년 수조 원의 세금으로
공무원 연금의 적자를 메워주는 데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2014.2.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상해를 입은 사건은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이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갔던 대학 새내기들의 죽음과 비명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사고가 생겼을까.
오대양 집단자살사건'과의 연관설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는데 .이 때 30여 명의 용인 공사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세월호의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사망자들, 특히 아직 못다 핀 꽃 한 송이처럼 속절없이 가버린 어린 영혼들이 너무도 가엾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의 한은 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깊은 상처로 남아 생각할 때마다 날카로운 비수로
살갗을 도려내는 아픔이 된다.
이 처절한 살육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쉬이 사람들의 기억과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지만
가족들은 평생동안 무시무시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위에 살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선박회사와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들이 저지른 명백한 살육이다.
구조는 나 몰라라 하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제일 먼저 구조선에 올라탄 이들은 뻔뻔하게도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준석 선장은 4년 전 OBS 인터뷰에서
” 우리 승무원들 지시만 따르서 행동하시면 어느 교통수단보다도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해 놓고
그는 정작 침몰 당시 선장 신분을 숨기고 팬티 바람으로 제일 먼저 탈출했다.
30분만, 아니 20분만 빨리 배를 떠나라고 탈출 명령을 내리고 지휘했더라면 다 살 수 있었을 것을
배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정작 자기들은 전용 통로로 제일 먼저 탈출을 했다.
이 대목이 바로 누구나가 제일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피난시킬 책임이 있는 선원들의 잘못된 판단과 무책임으로 승객 302명의 귀중한 생명을 내버리고
도망간 이들은 당연히 법의 준엄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해운사는 수익에 눈이 멀어 선박에 무리한 과적을 하고, 행정 관청과 해운조합의 선박 관리 감독의 부실도
이런 사건을 일으키게 했으니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청해진 해운사의 실소유주가 오대양집단자살사건으로 유명한 사이비종교인 구원파의 유병언이라는 것이다.
세칭 구원파는 기독교 복음침례회 라고도 하는데 유병언은 1987년 종말론을 내세우며 종교집단 자살사건으로 알려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뽑힐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로 여행 간다는 즐거움으로 세월호에 탑승한 이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너무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짠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를 때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까.
한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진 영혼들은 어디서 얼마나 헤매일까.
혹시라도 갈 곳을 몰라 바닷속 깊은 심연의 암흑 속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지는 않고 있을까......
오늘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라는 가사가
위로가 되기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임형주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임형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5월 1일,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으로 재발매하여 이 수익금 전액을 희생자 유가족에게 기부할 것이라고 한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원래 미국에서 화제가 된 詩『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의 일본어 번역『千の風になって』(せんのかぜになって)에서 유래했다. 노래 제목은 3행에 나오는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에서 따 왔다고 한다. 이 곡은 1932년 미국 볼티미어의 주부 메리 프라이가 지은 시에서 유래됐다. 프라이는 모친을 잃고 상심해 있던 이웃을 위로해 주기 위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 이 시에 일본의 유명 작곡가 '아라이 만新井満'이 2001년에 멜로디를 붙였고 그 후 秋川 雅史가 다시 불러 유명하게 되었다.
또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지난 2002년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 테러 1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를 잃은 11살 소녀가 이 시를 낭독하여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또한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지난 2009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곡으로 헌정하며 널리 알려졌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진기DSLR과 미러리스 (0) | 2024.11.26 | 
|---|---|
| 다시 생각해 보는 행복론 (0) | 2014.08.12 | 
| 배낭이야기 (0) | 2013.11.16 | 
| 영생과 사이비종교 (0) | 2013.07.18 | 
| 인천 공항 (0) | 2012.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