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야기

핫토가야의 추억

世輝 2005. 6. 19. 17:26

 



 

 

핫토가야의 추억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귀국하여 몇 개월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일본 땅에 발을 디딘 것은 1987년  4월 초, 사쿠라가 만발한 동경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4월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 일본의 벚꽃 흩날리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생기고 나니 무엇보다 생활 기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한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의 앞날과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가난해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그때 내 생각으로는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도착 당시, 세타가야에서 잠시 있다가  집을 얻은 곳이 동경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작은 도시, 하토가야라는 곳이었다.

 

그래도 번듯한 맨션을 구하고 나니, 지인들이 너무 화려하게 출발하지 말라고 충고를 해 준다.

 

내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일본의 흥청망청했던 거품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어려운 상황이였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일주일 정도 알바를 하면 한국에서 웬만한 샐러리맨 한 달 월급을 벌던 시절이기도 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장남을 안고 생활을 시작한 곳이 핫토가야의 맨션이었다.

 

 집을 얻고 보니 수중에 남은 돈이라곤 얼마 되지 않아서  일거리를 찾아서 바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고달픈 시절이었다.  

 

일본어를 기초밖에 모르는 내게 일본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머릿 속에 뭐가 들어 있던, 어떤 능력이 있던, 언어가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것쯤은 독일 유학생활에서 충분히 경험을 한 바였다.

 

 신주쿠로 이사 갈 때까지 근 2년을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동경으로 가서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였다.

 

당시에 외곽도시의 특성상 어린이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 출근할 때는 자전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했다.

아내도 직장 생활을 하여서 저녁에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한동안은 연년생인 아이 하나는 앞 보조의자에 앉히고 한 아이는 뒷좌석에 앉혀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다.

우리가 동경으로 이사 올 때까지는 이런 생활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자전거를 타면, 춥고 바람 부는 날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앞만 보고 살던 시절이어서 견딜만했던 것이다.

웬만한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것은 젊었던 것도 있었거려니와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는 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 후 번듯한 일자리를 잡아서 동경으로 이사 오고 나서도 바쁜 일상생활이 지속되었지만 어린이집이 바로 집 옆에 있어서 한결 나아졌다.   

 

우리 부부의 젊은 신혼 시절을 보낸 핫토가 야를 가끔씩  생각하며 그 시대를 회상하면서 즐겁게 웃기도 한다.

그 후 계속하여 동경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지만 하토가야의 생활은 잊히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던 그 젊은 시절을 회상하노라면 늘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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