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강제노동을 한 기분이네..."
시골집의 도배를 마치고 나서 아이들이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여름휴가 대신에 시골집에 들러서 벌초도 하고 도배도 해야겠다고 벼뤘지만, 한여름 내내 계속된 폭염때문에 결국은 8월의 끝자락인 26일, 드디어 고향으로 출발을 하였다.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막 돌아온 대학 일 년생인 딸은 알바가 있다고 슬그머니 빠진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주춤했지만 우린 도시를 뚫고 전진했다.
고속도로.. 운치 있는 청주의 가로수길을 빠져나가 호젓한 산길의 드라이브.
덥다...
바로 가지고 간 스티렌보드. 본드. 도배지. 풀을 내놓고 일을 시작했다.
오래된 벽지를 다 걷어내고 가구를 치웠다.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청소도 제대로 안된 집안에서 사시는 노모.
사실 그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지만....우리 부부가 자주 찾아뵈던가 모셔야 하는데 모친의 그 특유의 성격과 많은 농사거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장남인 내가 무심하고, 큰 며느리라는 게 외국에서 지내니 자주 찾아뵐 수도 없는 문제고 작은 며느리는 아예 기대도 안한 지 오래....
낡은 방안을 군데 군데 작은 손질을 해가며 벽에 압축 스티로폼을 본드로 발랐다.
그러고 나서 크나큰 안방 도배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저녁 10시.
근 일곱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동안 아내는 부엌청소를 했다.
방안에 있던 낡은 장판을 다 걷어내고 깔개를 펴고 잠을 이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마당에서 불을 피웠다. 아이들도 마당에서 그냥 샤워를 한다. 다 큰 자식들이....
벗겨낸 벽지, 오래전 콩을 털고 남은 작은 나뭇가지를 태웠다. 그리고 위에다 풀, 잡초를 얹어 놓았더니 그 연기에 모기가 다 도망을 간다.
그 모닥불의 현란한 빛에 취해서 도란도란 마루청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시원한 바람의 유혹에 잠을 자려했더니 윙윙거리며 모기가 달려든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웃으며 아내가 말한다.
" 아이들이 마치 강제노동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네요~"
고집불통인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일을 독려해 대니정신을 못 차리며 바쁘게 일을 도와주던 아이들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내가 성질을 급하여 소리를 질러대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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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잠을 깨우는 불청객이 있다..................... 파리.................
아침에 읍으로 가서 비석을 주문했다.
마침 윤칠월이고 해서 아런 저런 일을 계획하고 있는 모친과 함께 비석을 준비하려고 갔다.
증조부모. 조부모, 부친의 묘비를 주문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 오늘 벌초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트에 들러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산허리에는 안개가 휘감겨 있다.
집에 도착하여 읍에서 사 온 장판을 안방에 깔고 가구를 놓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진작에 이렇게 해 드렸어야 하는데... 후회막심이다.
그 새롭게 단장된 방 안에서 기분 좋은 점심을 마치고 선산으로 갔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오르는 길에 온갖 잡초와 들꽃이 무성하다. 그 위에 칡줄기와 이름도 모를 줄기와 잎이 뒤덮여 있어서 길이 막혀 버렸다.
낫으로 연신 가지와 풀을 쳐대면서 올랐지만 팔다리에는 무성한 상처들이 생겨 뜨끔거린다.
아이들도 많이 긁혔다.
작년엔 예초기가 고장 나서 아내와 자식들이 낫으로만 벌초를 했다. 그 고생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예초기를 고쳐서 네 개의 산소를 깎았다.
주위에 난 무성한 잡초들...... 이글거리는 태양이 얄밉다......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땀.
저녁이 되니 그래도 선선해진다.
흐르는 땀을 닦으려 잠시 쉬다 보니 노송 사이로 저 멀리 산너머에 적암이라는 마을과 구병산과 시루봉이 보인다.
임실... 행정지명은 임곡이라 하는 이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이다. 선조님들의 묘소가 있는 이 작은 산에 오르면 그 주위의 아름다움에 감동이 된다.
사람들이 순수한 이 동네에 내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다. 작은 아버님 댁에 놀러 와서 지내던 그 추억이 있다.
작디작은 산개울에서 가재를 잡고 저수지에서 헤엄치며 물고기를 잡던 일. 감을 따고 고염을 따서 먹던 일.
지금은 다들 큰 도시로 자식들을 따라서 이사를 가서 얼마 남지 않은 친척들. 마을엔 탈도시하고 내려온 낯선 이들이 더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벌초를 마치고 탈진하여 돌아온 우리를 맞이한 아내가 저녁을 내어 준다.
피곤하여 자리에 그냥 눕고 싶지만 그 시골의 불편함을 피해 서둘러 귀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