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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世와 떨어진 은둔의 山.
俗離山.
속리산은 두말할 것 없이 한국의 名山입니다.
속리산에는 국보가 가장 많은 법주사와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문장대도 있지요.
내가 속리산에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였습니다.
그전에 어렸을 때 불교도인 모친을 따라 간 적은
있다고 하지만 기억조차 못하겠네요.
그 당시로서는 험하디 험한 말티재를 올라가느라고 전세버스를
뒤에서 밀면서 올라갔으니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요.
집에서 엎드리면 코닿을 것 같이 가까운 속리산이었지만 수학여행이랍시고 가서는
교통이 편리해지고 나서는 지겹도록 가 본 것이 속리산이어서
좋은 세상 구경을 하도 많이 하고 나서 그런지,아니면 정서가 메말라서 그런가는 알 수 없지만
먼 옛날,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들렸던 제주도는 천국 속의 한 장면처럼내내 나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있을 때, 민단 간부 연수회에 참석하여 며칠동안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서 그런지 세월이 가면 취향과 정서가 자꾸만 변하는가 봅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순대도, 짜장면도, 부대찌개도 맛이 없어지는걸
보면 배가 불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 사물을 대한 그 시절의 감격과 환희는 잊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치 첫사랑처럼 말입니다.
첫사랑은 풋사과처럼 덜 익었지만 달콤하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어서 속리산 가는 길이 아주 편해졌지요.
그러나 예전에 속리산에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청주까지 가야 했지요.
가을에는 정말 대단합니다.
청춘 남녀가 아니더라도 그 환상의 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노라면
바람이 스쳐 갈 때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지요.
그 플라타너스로 된 가로수 길을 따라가면 청주 시내가 나타나지요.
시내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無心川과 牛岩山을 따라
상당산성 쪽으로 드라이브를 해보면
청주의 새로운 맛을 느껴 볼 수도 있지요.
청주를 벗어나서 보은쪽으로 가다보면 대청댐으로 빠지는 길이있습니다.
그 곳 호수 옆의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 더욱 운치를 느낄 수 있지요.
2003년, 봄인가... 아내와 둘이서 호수를 옆에 끼고 드라이브하면서 다녀왔는데 정말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청주에서 속리산이 있는 보은으로 가는 길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래의 국도이고 한 곳은 산길인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쳐들어 올 때나 동학군들이 한양으로 진격할 때 이용했던 아주
옛길입니다.
이곳의 경치가 참 좋습니다.
강원도 대관령길 못지않은 경치랍니다.
구불구불한 고개를 올라가면 피반령이라는 험한 고개가 나오는데
이 산속 깊은 곳에 새로이 도로가 확장 포장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요.
옛날에는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낭떠러지 산길이라서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곳이지요.
비 개인 날, 피반령에 서서 하얀 운무가 산허리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좋은 줄 몰랐던 고향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좋아지는 걸 보니 나도 이제 한물간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 시절의 친구도, 학창시절의 친구도 정겹게 느껴지니말입니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