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향기에 젖어드는 회한(悔恨 )

世輝 2012. 3. 30. 12:06

 

 

 

월요일이었던가? 차창 밖으로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있어 반가웠는데..

남녘 땅이 아니라 서울의 거리에도 이제 이런저런 꽃이 피기 시작하는가 보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피고 개나리 꽃망울에도 물이 오를 때로 올라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향긋하기만한 꽃 내음이 풍겨오는 듯하여 둘러보지만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다.

 

아직은 간혹 변화무쌍한 봄바람이 차고, 꽃샘추위가 시샘을 하면서 냉기를 쏱아내고 지나 가지만

자연은 여전히  대순환이라는 섭리 속에서 움직인다.

 

한편으로는 따뜻한 봄이 와서  좋긴 하지만 세월이 그만큼 또 흘러감에 작은 탄식이 나온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드니 지난 날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이 자꾸만 떠오른다.

 

2년 전 4월에 갑자기 작고하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안타까움에 잠을 설치게 된다.

늦게 핀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고향의 길을 따라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돌아가신지 하루 만에 친척 아주머니가 왔다가 발견한 어머님의 죽음은 정말 믿기 힘들었다.

마치 누군가 거짓말을 하는 듯한 착각 속에서 늦은 밤 고향으로 향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회한 속에서 어둠을 뚫고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상념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추나무 백그루와 이런저런 나무묘목들을 사놓고 심으려고 포클레인으로 밭을

다시 정비하고 인부까지 구해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식목을 할 전 날이 되어도 연락이 없길래 찾아가 보니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한다. 

 

인기 작가이자 방송인이기도 한 재일교포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라는 책을 작년 초에 읽었다.

일본어로 된 책인데 한국에서도 작년에 번역하여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 책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받고 구마모토로 가는 도중 어머니에 대한 회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허탈하고도 복잡한 심정에 어머니의 일대기를 썼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내 어머님 생각에 공명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 역시 밤늦은 귀향 길에 온갖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멍한 상태였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도 세고 성격이 괄괄하여 자식들의 말도 듣지 않는 분이었지만 평생을 성실하게

장사와 농사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운 분이셨다.

조용하게 일만 할 줄 아는 성격이었던 아버님은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성격이라서  

대신에 억척스럽게 바깥 일을 도맡아 하시며 땅을 늘리고  자식들을 도회지로 내보내  교육시키셨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7년 동안 고향이 좋고 혼자가 편하다며 홀로 사시더니 그렇게 갑자기 떠나셨다.

    

병원에 입원하여 오래도록 앓다가 돌아가셨다면 더 고생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몇 년 동안 무릎이 아파서 항상 힘들어했다. 무릎뿐 아니라 아마도 노쇠현상으로 몸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고된 농사일을 하며 사신 덕에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고 원하시는 대로

많은  땅을 사들여 부농이 되었지만   몸에 밴 근검절약은 지독해서 여간해선 돈을 쓰지 않더니만

돌아가시기 전에 큰 돈을 들여서 시골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셨다.

무릎이 워낙 아파  수세식 화장실도 집안에 만들고 안채와 바깥채를 모두 수리해 놓고 1년 반밖에

사시질 못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햇볕이 잘  드는 고향의 뒷산을 사들여 아버님을 모시고 나서도 윤달이 있던 해에는 흩어져 있던

선조님들을 이장하고 비석까지 세웠다. 그러더니 모친의 산소까지 준비를 하시고 나서 자식들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던 분이다. 

 

 

영면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가던 중이었던가.

벚꽃이 피어 있던  길가를 지나가는데  문득 아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래도 어머님은 복도 많은 거예요, 이리도 아름다운 계절에  꽃길을 따라가시니~"

 

아내는 타국에서 오랫동안 직장과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있었기에 가까이 모시질 못했던

안타까움에 그리 말했던 것 같다. 나역시 노모께서 시골에 홀로 계셔서 임종을 지키지 못해서

더욱 서러웠기에 그나마 꽃길을 

 

그래도 아내의 말에 작은 위안을 삼아봤지만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요즘 흔히 말하는 [고독사]였기에  두고두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텅 빈 시골집에 가끔 가면 목이 메어 오고 가슴 한편이 휑하기만 하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무뚝뚝한 부친보다 모친과의 추억과 정이 더 많이 쌓여 있다.

어머님과의 많은 추억들이 그저 가슴 아프기만 하다.

 

그나마 오랫동안 앓으며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질 않고  긴 고통 없이 돌아가셔서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통이 없는 죽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한편으로는 육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저 세계에서 편안하게 눈감고

지낼 수 있으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아픈 무릎과 노쇠현상으로 늘 약을 입에 달고 사시며 괴로워하셨다. 

 

장남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라서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세월이 더 가야 이 아픔이 없어질까?

 

작가 최인호가 죽음에 대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 법정스님은  

 

"막상 죽음을 앞두고 나서는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늙거니 죽는다는 것은 우주질서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 삶에 소홀히 한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입니다."  라며 초연한 자세를 보였지만

그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생명의 뿌리가 꺾였구나" 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자 기댈 언덕이라고 하신 그분도 어머님과의 속세의 인연을 아주 끊지는 못하였나 보다. 

 

 

 

.

.

 

 

오늘은 영상 12도까지 올라간다는 날이다. 

산행 중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땀이 난다.

가끔씩 냉기가 감도는 찬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완연한 봄날씨니

이젠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

 

그리고 봄이 왔으니 행여 좋은 소식이라도  들릴까  싶어 기대된다.

그래서 문득 생각나는 사자성어.

 

 

春 大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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