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탕
오랜만에 근처에 살고 있는 시골 고향친구들을 신림동에서 한잔하려고 만났다. 서울의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동 복개천을 따라 보라매 공원 쪽으로 쭈욱 가다 보면 왼쪽으로 시골집이란 식당이 나온다.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그냥 식당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혼자라면 기피하고 싶은 분위기의 식당인데 친구 하나가 그 쪽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그 집의 주된 메뉴는 영양탕이었다. 흔히들 영양탕,보신탕이라고 하는데, 내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집의 영양탕은 그런대로 맛이 좋았다. 고기가 졸깃쫄깃한게 그야말로 진미(珍味)였다.
내가 보신탕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때였는데, 자취방 주인집에서 먹어 보라고 갖다 준 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때는 지금처럼 고기가 흔한 때가 아니었기에 그냥 몸보신을 위해 먹었다. 외국 생활이 길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 후로는 먹은 적이 없다. 외국에서 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방학 동안에는 서울로 와서 같이 지내고 있다.
그 중에 딸아이가 작년부터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가 한국에서 온 학교 친구들이 보신탕이 가장 맛있다고 자랑을 해서라고 한다. 고기를 싫어하는 아내까지 나서서 같이 가자고 했다. 일생의 한번 쯤은 어떤 맛인가 맛을 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그러나 집사람과 딸아이에게는 맛 보이고 싶은 음식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보신탕을 혐오식품으로 규정해 한국에 대한 수치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다보면 흔히 눈에 띄는 게 영양탕 집 아닌가?
이번 여름에 우리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내 없는 틈을 타서 보신탕 집으로 돌격을 했지만 결국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미리 좋은 곳을 알았더라면 딸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했을 텐데..아니,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앞으로는 보신탕 타령을 안할테니까 말이다. 한국 사람들만큼 보약에 집착하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밀수 목록에는 필히 녹용이니 뱀이니 웅담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몸에 좋다며 사슴피까지 빨아먹는 곳도 많이 있다 하지 않는가? 까마귀가 당뇨병에 좋다고 입소문이 퍼져 잡아먹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한때 까마귀들 사이에 이민 열풍이 일어나 자취를 감추지 않았던가. 보약들을 외국에 까지 가서 즐기다가 국제적 망신도 당하지 않는가?
몸보신을 하기에는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해 가격이 만만하고 많이 생산되고 있는(?) 개고기가 적격이라고 애호가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흔히들 개고기가 정력에도 좋고 몸보신에는 속된 말로 끝내준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덥디 더운 복날에는 개고기로 보신을 한다.
그러나 난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예전에는 고기가 귀해 영양가가 없을 시절이라서 먹으면 힘이 나서 열심히 봉사를 해서 마나님에게 기쁨을 줬겠지만, 지금은 포식의 시대라서 특별한 보양식이 필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또한 특별히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건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개소주라면 모를까. 그러나 개소주에는 소주가 전혀 안 들어가고 한약재가 들어간다.그렇지만 개소주의 위력은 한국에서 대단해서 마나님이 낭군을 위해 준비하는 특별한 보약이고, 몸이 부실한 사람들의 약이다.
한국부인들은 남편을 위해 가끔씩 보약을 지어 온다. 남편이 힘이 없을 때 이 보약을 지어 오는데 이 또한 겁나는 일이라고 들 한다. 이 비싼 보약을 먹고도 힘이 나지 않으면 그 얼마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련가?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나를 위해 보약을 준비해 준 적이 없다. 아주 예전에 일본에서는 고양이를 잡아먹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인들이 영양탕을 비난할 때마다 고양이나 견공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다.
물론 지금은 고양이를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양이 외에도 먹을 게 많은데 구태여 맛없는 고양이를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이 영양탕 대신에 일본에서는 여름 더운 날 장어(unagi)를 먹고 힘을 낸다. 왜 한국에서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우나기라는 일본 영화도 있지 않았던가? 그 우나기가 장어라는 뜻인 것이다. 기름진 음식을 조심하고 있는 나는 요 몇 년 한국에서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신림동에서 오늘 먹은 장어는 특별히 맛이 있었다. 주인은 중국산이 아니라서 먹어 보면 알 거라고 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영양탕보다는 훨씬 맛이 있었다. 아마도 신림동은 서민들의 음식천국인 것 같다.
대형 횟집이나 갈빗집과 더불어 밤에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이 시끌벅적한 곳에는 고시촌이 밀집해 있고 조금 더 가면 서울대가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은 강남의 압구정과는 다른 소박한 젊은이들의 멋이 있고 낭만이 있는 곳이다.
이 변방의 거리에서 나는 야만인이 되어 수난받고 있는 견공들과 함께 포효한다. 멍멍.. 멍멍..수난받는 견공들의 원혼이 보이는 듯하다. 애완견이 아닌 식용개였겠지만........
다시는 들리고 싶지 않은 견공들 전문식당, 그 식당 이름은.... /시골집/....이었다.
2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