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인과 간병

世輝 2006. 7. 9. 11:04

지금 한국은 노령화시대가 시작되었다.
다출산으로 인해  가족계획을  역설하던 정부는 이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얼마 전만 해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 주고  
훈련까지  면제시켜  주었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가  시작되어 
20년 전 부터 적극적인   출산 장려를  하여  보조금을  지급하고  
병원비를  학교입학 때까지   무료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장려책을  시행했지만   
한 번  떨어진  출산률은  다시 오르지  않고 있다.

아이를 기르는  것도  힙들지만  요즘은 자 신들의  노후를  아이들에게 부담 지워주는 것도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시 부모를  모시고 사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건강한 시부모인데도  그러할진데  병들고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건  
더욱  힘든  일이다.

예전처럼  전업주부가  흔치 않고  맞벌이를  해야  그럭저럭  괜찮은
생활을 할수 있기 때문에  병든  부모를  모신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지난해  2월에  아버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는데  그게  흔히  말하는
중풍이란 것이었다.
이런  큰 병은  남의  일이거니 했던  것이  막상  눈앞에  닥치니
그야말로  패닉상태가  되었다.
뇌출혈이 큰 편이어서  큰 회복은 기대할 수 도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있다가  간병인을  한 분  구해서  돌보게  해 드렸다.

아내는 외국에서 있고  동생들은 너몰러라하고, 일본에  사시는  누님은  철저한  출가외인 입장이셨다.

큰 일만 생기면 당연히 장남이 다 알아서 하려거니 하는 보수적이고
편향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      
시골에서 부농이신 어머님도 그 많은 병원비와 간병비를 아까워하셨다.

그래서 결국 내 혼자  모든  것을  부담하게  되었다.
약  팔백만 원 정도 들어갔지만  돈이  전혀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당연히  자식 된  도리로서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또한  아내가  손이 커서  예전부터  시부모에게  돈을  드리는  것은  
내게  권하기도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성의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버님 외에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건  아내 책임도  조금  있지만  둘째 동생 내외의  말도  안 되는  
트집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병원에서  퇴원시켜  집에서  돌봐드리라고  하는  
말을  듣고  고심했다.

도저히  아내는  직장과  아이들 때문에  귀국이  안되기  때문이고  나머지  
형제자매는  아예  의논상대가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인전문병원으로  옮기었다.
병원비는  한 달에 약 150만원  이상이 든다.
처음에는   그보다  하한선을 말하지만  아무  탈 없어도  기본적으로  
최소한  그 정도는 들었다.

생활보호대상자들은  병원비가  엄청나게  싸지만  자비부담을  하는
환자들은  비쌌다.
내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간병의 질과  태도였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에  있을  때는 한 분이  붙어서  정말  잘해주었다.
비용은  간병비만  한달에  150만 원 수준이고  식사비로  약 1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하였다.

노인전문병원은  한 명이  약  6명에서  8명을  돌보는데  한  명이  
전담해서  할  때와는  차이가  너무도 났다.
그러면 간병비가  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병원비 내역을 물었더니  간병비 항목만  50만 원이 넘었다.
그러면  8명을 담당하니  8x50만=450만  아닌가?

너무 비싸다고 하니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었지만  아무래도 병원 측의
횡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납득이  전혀  안되었지만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는  애길 들었다.     

그래서 한 달이 지나  퇴원을  결심하고  다른  전문병원으로  옮기기로  
작정하고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보았다.

한  신설병원이    그래도  간병인  비용을  효율적으로  책정을  하고  있었다.
한분이  6명을  보면  그  한 분  간병비를  6명 환자가  부담하여   
나누어서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당시 말을 못 하고  가래가 많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있었고  식사는 코로  영양식을 넘기는 상태였다.

아무리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해도  담배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피우신  담배는 조금씩 폐를 약하게 했다.

시골에 사는 분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약주도 좋아하시는 편이어서
매일  드셨다.
아무리 금주를 권해도 안되었다.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건강을  위해  그렇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상태를  보면서  
담배의  나쁜  점에  대해 알았다.

고혈압이셨는데   짠 음식과  술과  담배  과로를 골고루 하셨다.
그건  절대  금지해야  되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자신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적어도  나만은  그것들에  대해  누누이  갈 때마다  말씀드렸지만
마이동풍 격이었다.
그건  어머님도 마찬가지다.

이제  편하게 사시라고,
자신을 위해 돈도 써가면서  지내시라고   십수 년 전부터 
말씀드렸지만  듣지  않으셨다. 

자신이  갈 날이  멀지  않았는데도  아직도 욕심을 부리신다.
옛날의 그  어려움만 기억하시는 건지,,,

짧게  끝날 간병이 아닌 것 같아  병원을  옮기기로  작정하니  
어머님이  자신이  돌보겠다고  해서
만류했지만  듣지  않으셨다.

친척 아주머니가  도와주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듣고  할 수 없이
집으로 모셨다.
간병할 의료 기구를 모조리 사서 드리고 친척아주머니에게 드릴 비용도 드리고
영양식 캔 등을 준비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친척아주머니의 도움도 없었다.
농사거리도  줄이지  않았다.
가축도  그대로이고...
그러니 아버님에  대한 간병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했던  것 같다.

남들은 그 완고함과  욕심에  대해  모른다.

그렇게  아버님은 작년 초여름에  가셨다.
평생  고생을  하여 시골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부를  쌓아 놓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 써보지도  못하고 가셨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노후와  간병은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
자식이  건강하고  능력이  있으면 그래도
낫지만  능력도  없고 건강하지  않다면
노인들의  말로는  비참하기만  할  것이다.

아버님이 그렇게 되시고,  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식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장남과  차남 여부를  떠나   내가  노인이  되어  병들었을  때
나를  잘  돌봐주고  아껴주는  자식에게  충분한  답례를  해 주고 싶다.

노인이  되어  병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어디 있으랴.
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모두  고통을 안겨 주는 그 부담을
덜기  위해  노후자금만큼은  충분히  벌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스컴에서도  노인들의  간병문제에  대해 심층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국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린이집에  투자하는 것만큼  노인병원과 노인 복지시설을 확충하여서
실비로서  병든 노후를  보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2006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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