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2006.1.27 ............................................................. 구병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유명한 산이다. 이름 그대로 아홉개의 병풍을 둘러싼 산이다. 속리산 뒷 쪽이다. 속리산 천황봉을 넘어 넘어가면 나올까 싶다. 말티재를 넘어 법주사를 거쳐 문장대에 오르고 천황봉으로 발길을 돌려서 계.. Story&Photo of KOREA/지방원정산행 2006.01.27
추석에 생긴 일 추석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고향에 들리기 때문일까. 비가 오는 날. 그것도 야간 운전은 피곤하고 사고의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청주를 지나 미원을 지나고 이원이라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인적이 드물고 모두가 잠이 든 고요한 시골동네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산골동네에서 딸이 만든 샌드위치를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요즘 들어 대학에 입학하려고 한국에 와 있는 고3 딸이 요리를 자주 하곤 한다. 입맛이 까다로운 장남도 맛있게 먹곤 하는 걸 보니 시집가서 소박맞고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시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니 웬걸,,,,,안 걸린다. 안 걸려.. 이게... 미쳤나. 이럴 때 써먹으려고 긴급출동 서비스보험에 가입했겠다.. 수필 2005.09.21
독일 생활의 회상 사용자 PC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스크립트를 차단했습니다. 원본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세월 속에 모든 게 잊혀져 가고 흔적들도 엷어져 간다.아무리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발버둥을 쳐도 세월은 아무런 소리 없이 흘러만 가고 그 속에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린다..이미 지나 버린 옛 이야기.비가 오니 다시 생각이 난다. ......... 서울에서 1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비행기 표 한장만 달랑 들고 날아간 독일.그곳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다.어딜 봐도 마음을 위로해 줄만한 게 없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한국 유학생들은 모두 자기 생활에 바빠서 서로 웃고 떠들며 소일할 만한 그런 맘 편한 입장들이 아니었다..시골 집에 기대면 좀 더 편한 유학생활을 했겠지만 그건 내 자신이 용납하지 못했다.다 큰 자식이 더 .. 수필 2005.06.27
핫토가야의 추억 핫토가야의 추억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귀국하여 몇 개월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일본 땅에 발을 디딘 것은 1987년 4월 초, 사쿠라가 만발한 동경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4월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 일본의 벚꽃 흩날리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생기고 나니 무엇보다 생활 기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한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의 앞날과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가난해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그때 내 생각으로는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도착 당시, 세타가야에서 잠시 있다가 집을 얻은 곳이 동경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작은 도시, 하토가야라는 곳이었다. 그래도 번듯한 맨션을 구하고 나.. 일본 이야기 2005.06.19
장례문화 장례문화 언젠가 본 일본 티브이 드라마 중에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있다.결혼도 안한 처녀가 사고로 죽어서 지상세계를 내려다보니 자기의 장례식의문상객이 별로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생전에 남에게 피해도 끼치지 않고 그렇다고 도움도 받지 않은 채깔끔하게 살아온 그녀이지만 자기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자기의 죽음과 무관하게 웃으면서 살아가고자기의 죽음에 대해 슬퍼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 놀랐던 것이다.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의 미래를 엿보다가 다시 살아난 후에 인간관계를 중시한 따뜻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자기가 죽어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많은 이들이 장례식에 참석해서자기의 죽음을 기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간.. 수필 2005.06.02
영양탕 영양탕 오랜만에 근처에 살고 있는 시골 고향친구들을 신림동에서 한잔하려고 만났다. 서울의 고시촌으로 유명한 신림동 복개천을 따라 보라매 공원 쪽으로 쭈욱 가다 보면 왼쪽으로 시골집이란 식당이 나온다. 허름한 주택을 개조해서 그냥 식당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혼자라면 기피하고 싶은 분위기의 식당인데 친구 하나가 그 쪽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그 집의 주된 메뉴는 영양탕이었다. 흔히들 영양탕,보신탕이라고 하는데, 내가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집의 영양탕은 그런대로 맛이 좋았다. 고기가 졸깃쫄깃한게 그야말로 진미(珍味)였다. 내가 보신탕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때였는데, 자취방 주인집에서 먹어 보라고 갖다 준 게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때는 지금처럼 고기가 흔한 때가 아니었기에 그.. 수필 2005.05.17
술 권하는 사회 술은 인류가 목축과 농경을 영위하기 이전인 시대에는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노아 방주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이 노아에게 포도의 재배방법과 포도주의 제조방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마한(馬韓) 시대부터 한 해의 풍성한 수확과 복을 기원하며 곡주를 빚어서 조상께 바치고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외국에서 돌아와서 놀란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였다. 텔레비전 속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여성흡연자와 여성음주자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있었던 십수 년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여성들이 대중음식점에서 공공연하게 음주를 하고 때론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남 모르는 장소에서 마시고,숨어서 담배를.. 수필 2005.05.17
명당 명당자리 나는 장남이라서 오래전부터 묏자리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조부님의 산소는 한참을 헤매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서 찾아뵙기도 힘들뿐더러 잔디가 자라지 않는 곳이기에 가깝고도 교통이 좋은 곳을 모친에게 상의했으나 그저 시큰둥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선산이라는 곳도 산소자리는 벌써 일가친척이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쓸모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모친이 몇년전부터 산소 할 자리를 찾아다니시더니 이곳저곳 흥정을 하였는데 그다지 흡족하지는 않으셨나 보다. 3년 전인가 지인의 부탁으로 공주에 있는 땅을 하나 사게 되었는데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라는 면소재지의 경치 좋은 곳인데 고속도로까지 생겨서 서울에서는 가까워지게 된 곳이다. 모친을 모시고 가니 도통 맘에 들어하시질 않는 것이었.. 수필 2005.05.17
아름다운 해후 ♧아름다운 해후 ♧ 불량학생의 유혹에 빠져서 임신을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안 부모들은 노발대발하였고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바로 입양을 시켜 버리고 딸을 시집보냈다.남편을 사랑하진 않고 어쩔 수 없이 결혼하였지만 남들이 살듯이 그렇게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살았다. 둘 사이에 남자아이도 가졌다. 그런데 그녀가 세월이 흘러 흘러 어느 어촌에 요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부모 없는 고아소년이 살고 있었고, 그녀의 아들은 그 고아 소년과 친하게 지내면서 놀게 되었다. 그 고아 소년을 본 순간부터 그녀는 직감으로 그녀가 낳아서 입양시켜 버린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과 너무 흡사한 고아 아이, 그런데 어느 날 바다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그녀의 아이를 구하려던 고아 아.. 일본 이야기 2005.03.09
기독교인들의 에덴동산과 환경파괴 성경을 보면 태초의 에덴동산과 천국실현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에덴동산이 도대체 어디일까? 지구가 아니고 그냥 추상적인 의미일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래도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살았던 에덴동산은 동남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현대적 의미의 에덴동산이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살아 가야 할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보면서 조금씩 이 에덴동산을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 숱하게 쏱아져 나오는 일회용 용품을 비롯한 쓰레기는 이 지구를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또한 끊임없이 쏱아내는 배출가스는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물 맑고 공기 좋다던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느 곳이나 오염된 물과 매쾌한 매연이 가득한 .. 수필 2004.05.19
이승 보이지 않는 세계, 영계 흔희들 저승이라고 말하는 곳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뇌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영계를 가지고 사람을 농락해 왔던가? 만약에 영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종교가들은 우리에게 거짓을 행한 게 된다고 한 어떤 이의 글을 되새겨 본다. 그러나 죽음은 항상 우리 옆에 있다. 9.11테러 때나 이라크 전쟁 때나 대구 지하철참사 때나 우린 겉으로는 그 아픔을 나눈다고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아픔을 같이 공유했던가? 그 아픔을 많은 이들이 진정으로 깊게 공유할 수 있었다면 인류역사에서 전쟁이 차지하는 부분은 적었을 것이다. 그 처절한 아픔이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데 우리는 무덤덤한 일상생활에 파묻혀 살고 있다. 심지어 일가친척이나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 수필 2004.05.09